詩다움

삼킬 수 없는 것들 [나희덕]

초록여신 2010. 3. 29. 05:09

 

 

 

 

 

 

 

 

 

 

내 친구 미선이는 언어치료사다

얼마 전 그녀가 틈틈이 번역한 책을 보내왔다

「삼킴 장애의 평가와 치료」

 

 

희덕아. 삼켜야만 하는 것, 삼켜지지

않는 것, 삼킨 후에도 울컥

올라오는 것… 여러 가지지만

그래도 삼킬 수 있음에 늘 감사하자. 미선.

 

 

입 속에서 오래 뒤척이다가

간신히 삼켜져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것,

기회만 있으면 울컥 밀고 올라와

고통스러운 기억의 짐승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삼킬 수 없는 말, 삼킬 수 없는 밥, 삼킬 수 없는 침,

삼킬 수 없는 물, 삼킬 수 없는 가시, 삼킬 수 없는 사랑,

삼킬 수 없는 분노, 삼킬 수 없는 어떤 슬픔,

이런 것들로 흥건한 입 속을

아무에게도 열어 보일 수 없게 된 우리는

삼킴 장애의 종류가 조금 다를 뿐이다

 

 

미선아. 삼킬 수 없는 것들은

삼킬 수 없을 만한 것들이니 삼키지 말자.

그래도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자. 희덕.

 

 

 

* 2010 좋은시, 삶과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