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비가 3 [이성복]

초록여신 2010. 3. 15. 10:13

 

 

 

 

 

 

 

 

 

 

 

어떻게 꽃은 잎과 뒤섞여

잎을 핏물 들게 하는가, 마라,

생각해 보라, 비린내 나는 내 살과

단내 나는 내 삶과 그런 것들 속에서

내숭 떠는 저 초록의 눈길을

내가 어떻게 받아 내야 할지, 이 엄청난

배반, 초록 식물들이 배반하는 황톳길

생각해 보라, 어떻게 황톳길 위로

붉은 네 머리 댕기 같은 붉은 꽃이 나타나는지!

침 한 번 삼키듯이, 헛기침하듯이

그리 쉬운 일이었던가, 마라

내게 어렵지 않은 시절은 없었다

배반 아닌 사랑을 난 기억하지 못한다

솟구치는 것은 토하는 것이었다

나를 사랑하지 마라

 

 

 

 

* 시처럼 살고 싶다(문경화 엮음, 시공사,2003) ㅡ<비 오는 날> 어울리는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