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몽해항로 1 [장석주]
초록여신
2010. 2. 2. 19:43
몽해항로 1
ㅡ 악공(樂工)
누가 지금
내 인생의 전부를 탄주하는가.
황혼은 빈 밭에 새의 깃털처럼 떨어져 있고
해는 어둠 속으로 하강하네.
봄빛을 따라간 소년들은
어느덧 장년이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네.
하지 지난 뒤에
황국(黃菊)과 뱀들의 전성시대가 짧게 지나가고
유순한 그림자들이 여기저기 꽃봉오리를 여네.
곧 추분의 밤들이 얼음과 서리를 몰아오겠지.
일국(一局)은 끝났네. 승패는 덧없네.
중국술이 없었다면 일국을 축하할 수도 없었겠지.
어젯밤 두부 두 모가 없었다면 기쁨도 줄었겠지.
그대는 바다에서 기다린다고 했네.
그대의 어깨에 이끼가 돋든 말든 상관하지 않으려네.
갈비뼈 아래에 숨은 소년아,
내가 깊이 취했으므로
너는 새의 소멸을 더듬던 손으로 악기를 연주하라.
네가 산양의 젖을 빨고 악기의 목을 비틀 때
중국술은 빠르게 주는 대신에
밤의 변경(邊境)들은 부푸네.
* 몽해항로, 민음사(20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