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그러므로 바람의 수기를 짓는다 [박주택]
초록여신
2009. 11. 29. 11:21
우리들은 또 이곳에서 바람의 주저함과
폭풍으로 변하는 힘과 옥상에 가라앉은 고요가
마음을 꾸미느라 끙! 허나 신음을 참는 것을 듣는다
먼 길에 우리를 떨어뜨려 놓고 고향은 어디를 가셨는가
여름은 오고 가을은 오고 무덤 뒷동산에 할미꽃은 피셨는가
다가올 죽음 하나 병실에 누워 저주를 퍼붓다가 이제 막 잠이 들고
죽음보다 앞서 온 겨울은 술집을 어슬렁거린다
저 죽음에 누군가 슬퍼하리라, 백야처럼 하얀 달과
달의 길게 빼문 혀, 우리는 그것을 기껏 바람의 수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천천히 대로를 걸으며 생각한다, 눈물에 가라앉고
불면에 고이는 것이 죽음의 전부라면
울컥 이 살아 있음이 송구스럽다
저 죽음이 덮일 것이다 무엇인가에 덮여 흙으로 돌아갔다고도 말하고
하늘로 돌아갔다고도 말하리라, 그리고 저주가 자탄으로 변하고
용서하는 말로 얼굴이 맑아질 때쯤 영안실 밖으로는
하얀 눈이 내려
슬프디 슬픈 아름다움을 완성하리라
* 시간의 동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