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문득 나무 그늘 아래 저녁 눈 내릴 때 [박주택]

초록여신 2009. 11. 29. 10:14

 

 

 

 

 

 

 

 

 

 

 

이 거리, 노래가 되다 만 빛들이

갈 곳을 잠시 잃어 가야 할 곳을 찾지 못한 사람과 섞인다

천천히 길들 나무들의 눈빛에 힘입어 길게 뻗어 있음을

자랑한다, 길을 노래하는 자 불행했다

기적을 기대하는 자 나무 그늘 아래 잎사귀에 덮이고

무엇이 되고 싶었던 자 모자를 무릎 위에 얹은 채

자신의 차례에도 입을 다문다, 저녁 눈 내리고

함부로 어깨를 부딪는 저녁 눈 내리고 이제 더 없이

자신을 불러줄 사람을 찾지 못할 때

어느덧 이것이 생의 하루가 아니라

생의 전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음에

길은 구부러진다, 이제 어디론가 향해 걸어가는 것은

길이 시작된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다시 돌아가는 그 길로 걸어갈수록

자신이 가야 할 곳과 가까워졌음도 깨닫는다

저녁의 함박눈 내리고 해미임 가운데 만난

빛 하나 호흡을 불어 만든 불빛을

물 위에 풀어놓는다

 

 

 

 

* 시간의 동공, 문학과 지성사(200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