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어두운 저편 [남진우]
달은 모래로 뒤덮여 있어
바람이 불면 모래 쓸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모래바람 속으로 걸아가 누워봐
부우연 달빛 속 둥그렇게 떠오르는 모래무덤들이 보이지
여기저기 흩어진 모래무덤에서
희디흰 뼈들이 빛을 뿜어내고 있어
죽어가는 자가 뿜어내는 빛이 지상에 가득 차
세상을 더욱 적막하게 가라앉히고 있어
사방에서 모래가 흘러내려
발등을 덮고 가슴을 덮고 내 온몸을 덮고
아, 나 또한 서서히 모래무덤이 되어가는 걸까
밤새 발이 푹푹 빠지는 달 속을 헤매다 돌아오면
옷깃에서도 구두에서도 모래알이 툭툭 떨어져내리지
달은 모래로 뒤덮여 있어
아무도 가보지 못한 달의 어두운 저편
거기 내가 누울 자리가 기다리고 있어
바람이 불면 내 몸에서 씻겨나온 모래알들이
부우면 달빛 속에서 하염없이 흩날리지
허공을 떠다니는 모래무덤에서 한방울
눈물이 떨어져내려도
이내 막막한 허공 어디선가 말라붙어버리지
아무도 없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다만 차가운 어둠속에서 우리 모두 이렇게
죽어가는 거야
달의 어두운 저편
* 사랑의 어두운 저편, 창비(2009. 11.)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심연을 줄곧 탐색해왔다는 점에서 남진우는 우리 시대에 몇 남지 않은 상징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미지와 상징은 대개 '신성한 숲'에서 길어온 것들이었다. 일상의 빛과 그늘은 애초부터 허락되지 않았다는 듯, 그의 언어는 꿈과 환영 속에서만 피어난다.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의 시선은 달의 어두운 저편을 향해 있고 베일 너머의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허공의 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부재의 발소리. 끝없이 펼쳐진 모래언덕을 건너는 한 마리 낙타. 아련한 풍금소리...... 문득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그 풍경과 소리들이 시원(始原)의 감각을 일깨우는 것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다양한 동물의 형상을 입고 나타났던 남성적 허무가 '달'로 표상되는 여성적 손길에 의해 치유되면서 관능의 음악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달의 음악' 속에서 텅 빈 허공이 충만한 신화적 공간으로 태어나고 있는 시편들은 '성스러움과 사랑과 시는 하나'라는 오래된, 그러나 오랫동안 잊혀진 전언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ㅡ 나희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