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길잡이 [김은주]
삼촌 우리 엄마한테 욕하지 마요* 엄마는 하얀 봉투를 싫어해요 참 잘 했어요 도장 속 어린이들이 삼촌 주먹에 질려 보라로 떨고 있잖아요 이제 곧 저녁이니 파 껍질을 벗기고 양파처럼 얌전히 계세요
한결 같은 양파들의 자세가 불만인가요 보편적인 타격의 식순에 대해 고민할 때 삼촌 주먹은 점점 양파를 닮아가요 똑같은 표정을 부르는 둥근 생김이
한 알에서 다 까먹는 공기놀이의 편협한 규칙 같아요 일 년만 더 채우면 오십 년인데 할아버지는 자꾸 꺾기에서 한 알을 놓쳐요 손바닥을 빨아들이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까먹을 때마다 삼촌의 어깨 위로 무지개가 떠요 모든 떠오르는 건 근사한 일이지만
엄마는 기지개가 아프대요 빨주노초파남호로 살기 바랐지만 삼촌은 주노초파남보빨 혹은 보남파초노주빨 된 발음의 세계에서만 살잖아요
긴 말 필요 없는 이상하기도 이가 상하기도 하는 그 세계에서 썩은 비유는 있어도 더 이상 상할 비위는 없는 것처럼
무지개는 햇빛 속에서만 사니까요 삼촌 주먹이 바람을 때려 눕히며 광포로 달릴 때 햇빛들은 산산이 그림자를 토해내요 햇빛 대신 그림자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돌아올 때마다 엄마는 하얀 봉투 속에다 표정을 부셔 넣고 울어요
시절의 행방으로 살기 바랐지만 늘 순간의 한방으로만 기억되는 삼촌 삼촌의 손바닥 안으로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빨려 들어가면 저기 저 골목 끝에서 똥파리 씹은 표정으로 한 무리의 햇빛이 걸어 나오고 있을 거예요
* 영화 「똥파리」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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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1980년 서울 출생. 2009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
* 현대시, 2009년 11월호 <2009년 등단시인 특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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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답니다.
무려 3년이었던가 탈상을 하였지요.
할아버지를 떠나 보낸 뒤 30년 넘게 청상으로 보내신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아버지는 식사 전에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엄마는 그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주었나 봅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난리법석을 떨고 엄마에게 행패를 부리던 우리 삼촌이 있었다지요.
아무도 말하지 못했을 때
그때 당찬 우리 언니가 소리쳤다합니다.
삼촌 우리 엄마한테 욕하지 마요.
삼촌은 뭐 잘한 것 있다고 그러세요.
그 뒤 침묵이 흘렀고
결국은 모두 그 당찬 딸아이의 기세에 눌렀다지요.
희끗희끗한 현재에도
아직도 20대의 청춘에 사로잡힌 우리 삼촌
여전히 무지개빛 꿈속에 사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현실의 삶의 길잡이를 찾으시기를 희망합니다.
가족이기에, 그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양파의 베일에 쌓여진 삶이 종결되기를 바란답니다.
(허물어질 가족사, 초록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