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생활의 길잡이 [김은주]

초록여신 2009. 11. 7. 08:57

 

 

 

 

 

 

 

 

 

 

 

 삼촌 우리 엄마한테 욕하지 마요* 엄마는 하얀 봉투를 싫어해요 참 잘 했어요 도장 속 어린이들이 삼촌 주먹에 질려 보라로 떨고 있잖아요 이제 곧 저녁이니 파 껍질을 벗기고 양파처럼 얌전히 계세요

 

 

 한결 같은 양파들의 자세가 불만인가요 보편적인 타격의 식순에 대해 고민할 때 삼촌 주먹은 점점 양파를 닮아가요 똑같은 표정을 부르는 둥근 생김이

 

 

 한 알에서 다 까먹는 공기놀이의 편협한 규칙 같아요 일 년만 더 채우면 오십 년인데 할아버지는 자꾸 꺾기에서 한 알을 놓쳐요 손바닥을 빨아들이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까먹을 때마다 삼촌의 어깨 위로 무지개가 떠요 모든 떠오르는 건 근사한 일이지만

 

 

 엄마는 기지개가 아프대요 빨주노초파남호로 살기 바랐지만 삼촌은 주노초파남보빨 혹은 보남파초노주빨 된 발음의 세계에서만 살잖아요

긴 말 필요 없는 이상하기도 이가 상하기도 하는 그 세계에서 썩은 비유는 있어도 더 이상 상할 비위는 없는 것처럼

 

 

 무지개는 햇빛 속에서만 사니까요 삼촌 주먹이 바람을 때려 눕히며 광포로 달릴 때 햇빛들은 산산이 그림자를 토해내요 햇빛 대신 그림자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돌아올 때마다 엄마는 하얀 봉투 속에다 표정을 부셔 넣고 울어요

 

 

 시절의 행방으로 살기 바랐지만 늘 순간의 한방으로만 기억되는 삼촌 삼촌의 손바닥 안으로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빨려 들어가면 저기 저 골목 끝에서 똥파리 씹은 표정으로 한 무리의 햇빛이 걸어 나오고 있을 거예요

 

 

* 영화 「똥파리」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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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1980년 서울 출생. 2009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

 

 

 

* 현대시, 2009년 11월호 <2009년 등단시인 특집> 중에서.

 

 

.......

 

 

초등학교 1학년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답니다.

무려 3년이었던가 탈상을 하였지요.

할아버지를 떠나 보낸 뒤 30년 넘게 청상으로 보내신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아버지는 식사 전에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엄마는 그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주었나 봅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난리법석을 떨고 엄마에게 행패를 부리던 우리 삼촌이 있었다지요.

아무도 말하지 못했을 때

그때 당찬 우리 언니가 소리쳤다합니다.

 

삼촌 우리 엄마한테 욕하지 마요.

삼촌은 뭐 잘한 것 있다고 그러세요.

 

 

그 뒤 침묵이 흘렀고

결국은 모두 그 당찬 딸아이의 기세에 눌렀다지요.

 

희끗희끗한 현재에도

아직도 20대의 청춘에 사로잡힌 우리 삼촌

여전히 무지개빛 꿈속에 사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현실의 삶의 길잡이를 찾으시기를 희망합니다.

가족이기에, 그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양파의 베일에 쌓여진 삶이 종결되기를 바란답니다.

(허물어질 가족사, 초록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