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떠도는 마을 [강연호]

초록여신 2009. 10. 16. 06:54

 

 

폐교와 폐가가 정의하는 마을을

나는 투기꾼의 시선으로 마악 통과해왔다

거기 집 한 채 들이고도 싶었으나

모퉁이를 돌면서 다시 보니

마을은 아슬아슬하게 산비탈에 걸쳐 있었다

나야 지나가는 자의 낭만에 불과하지만

코끝에 걸린 몇 점 연기가 문득 매웠던가

깨진 사기그릇 속의 흙탕물처럼

마을은 그렇게 겨우 마을에 고여 있었다

나는 텅 빈 페트병을 걷어차면서

한때 농약이 들어 있었으리라 짐작했다

저만치 날려간 비닐하우스의 잔해가

다시 돌아와 거적 더미처럼 마을을 덮는다면

누가 들추어보며 혀라도 차줄 것인가

떠돌 곳 다 떠돈 뒤 물방개처럼

제 집을 찾아들게 할 것인가

나야 지나가는 자의 객기에 불과하지만

돌아보면 마을은 부지깽이를 휘두르며

어설픈 연민을 마구 쫓아내고 있었다

 

 

 

*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문학동네(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