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길 [김영남]

초록여신 2009. 10. 13. 07:25

 

 

 

 

하얀 꽃들이 내 오른쪽을, 빨간 꽃들이 내 왼쪽을

응원한다. 분홍 꽃들은 앞과 뒤를 분홍으로 응원한다.

이들은 바람이 불면 고개를 흔들면서 서로를 응원한다.

응원하다가 이내 바람개비처럼 돈다, 오색으로.

 

 

 그 부력에 이 지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붕 뜬다.

나는 그걸 뒤에 붙이고 뻗은 길을 한없이 달려본다.

청군인 내가 백군 대표인 '순'이와 손잡고 달려본다.

수평선 끝 푸른 하늘이 구부러진 곳까지 달려본다.

 

 

그 끝에서 부력을 떼고 다시 출발선을 뒤돌아보면

할머니, 어머니, 풍선장수, 해남 아저씨, 바지게,

복슬 강아지

고향 운동회 한구석이 박수를 치며 일어선다.

 

 

 

 

* 푸른 밤의 여로, 문학과 지성사

 

 

.......

가을이면 운동회가 열렸었다.

시골 초등학교의 운동회는 그야말로 한바탕 잔치였다.

모두가 친척이고 이웃이었던

그래서 마냥 웃을 수 있었다.

 

운동회마다 엄마는 김밥을 맛있게 해주셨다.

크기가 적당하여 한입에 쏘옥 하면..

 

학교 뒷산이였던가? 그곳엔 과수원이 있었다.

운동회 쯤엔 사과가 발그스레 익어 있었다.

김밥을 먹고

환타를 먹고

사과를 하나 아사사삭 씹어 먹으면 그야말로 꿀맛이였다.

 

그리고 운동회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청군 백군의 계주가 아니였다.

바로 향토 계주였다.

사는 마을별로 묶어서 하는 계주는

응원의 바다였다.

우리가 속한 마을은 늘 일등이였다.

육촌 남동생과 동네 오빠들, 친구들이 너무나 가볍게 빠르게 달렸다.

지금은 모두 아이의 아빠, 엄마들이 되어 있다.

 

세월은 유년의 기억을 싣고

가을이면 찾아왔다가

다시 아득한 먼 곳으로 떠난다.

하지만,

그 추억은 평생을 살게하는 힘이다.

코스모스가 가을이면 얼굴을 삐죽내밀며 찾아오듯이

그렇게 그렇게.

변하지 않는 것은 코스모스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저 방그레 웃고 있다.

(가을의 기억, 초록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