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의 재구성 혹은 이별의 재구성 [안현미]
나하고 나 사이에 늙고 엉뚱한 종족들이 있지 내 별로 놀러 오는 나들 나들 때문에 그 종족들은 불편하다고 불평하며 불안했어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사랑했지 난 정드는 게 특기니까 하루가 영원 같고 영원이 하루 같은 무협 판타지 같은 날들이었어 난 그날들을 CD로 구웠지 구워진 CD 속에서 난 무릎이 아팠어 너무 많은 감정을 과소비하고 게다가 너무 많은 눈물을 삭제했으니까 수만년 전부터 이 별은 아팠어 늙고 엉뚱한 종속들은 이 별의 종말을 전지구적으로 살포하면서 우리 종족의 언어를 모두 쓰레기통에 넣고 서둘러 이별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우리 종족의 위대함은 휴지통이라는 아이콘에 있지 '복원'이란 단추를 내장하고 있는 그러니까 이별은 이 별로 굽거나 이별을 이별로 굽는 따위의 일은 우리 종족에겐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란 거지 고통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고통을 받는 방법은 선택할 수 있다, 빅토르 프랑클, 멋지지? 이게 이 별의 재구성 혹은 이별의 재구성이란 엉터리 판타지 같은 이 시에 대한 키워드야, 친절하지?
* 이별의 재구성 / 창비, 2009. 9. 22.
"반짝! 설명하고 싶지만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어떤 섬의 가능성은 빛나고 있다"(「어떤 섬의 가능성」). 그녀는 '심은하 씨 아버지 심학규 씨'의 능글맞고 웃긴 대중문화를 노출시키는 동시에, 아니 노출시키면서 다스리는 희한한 재주와 (「이 별의 재구성 혹은 이별의 재구성」), 괴기를 노출시키는 동시에, 아니 노출시키면서 다스리는 노련한 재주와 (「이 상(箱」), 살림을 노출시키면서 다스리는 시간의 재주와 (「실내악」), 색을 드러내면서 다스리는 공간의 재주(「여름 언니들」)를 모두 갖고 있다. 왜냐, "겨울 속에도 연못 속에도 나무 속에도 없는 여자가/시간을, 물고기를, 사각지대(死角地帶)를 기르고 있"기 때문이고(「어안렌즈」), 그전에 "냉전도 반민주도 복도 복고, 지지고 볶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던, 엄마만 없"기 때문이다(「내 책상 위의 2009」). 그녀는 없음으로 오히려 형상성을 강화하는 서정의 재주도, 모성의 사회비판을 노출시키면서 다스리는, 연륜의 재주도 갖고 있다. 위험할 정도로 천박해진, 거의 시사적인 작금의 문학 신구 구분을 그녀의 시는 아주 가뿐하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교란시킨다. 그녀는 가장 오래된 ㅗㅅ재를 새로운 문법으로 다루고, 가장 새로운 소재를 오래된 문법으로 다룬다. 그녀 또한 모종의, 튼튼한 바탕이다. 하여, "여자 한때 나였던 저 여자" (「안개사용법」)는 말한다, "사랑은 인간의 일이었지만 그 사랑이 죽어서도 나무인 것은 시간들의 일이었습니다"(「시간들」)
ㅡ김정환(시인), 뒤표지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