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계절병 [안현미]
초록여신
2009. 9. 19. 21:31
고독은 나무처럼 자라는 것입니다 시간은 하나의 커다란 구멍이고 끝끝내 삶은 죽음입니다 거대한 고래처럼 거대한 고독이 두려운 나머지 시간을 밀거래하는 이 도시에서 서로가 서로의 휴일이 되어주는 게 유일한 사랑입니다 병인을 찾을 수 없는 나의 우울과 당신의 골다공증 사이를 자객처럼 왔다 가는 계절 그 그림자를 물고 북반구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의 날개 같은 달력 한장 가없는 당신 나의 엄마들 왜 모든 짐승들에겐 엄마라는 구멍이 필요한지, 시간조차 그 구멍으로부터 발원하는 발원수 같은 건 아니겠는지 시도 때도 모르고 철없이 핀 꽃처럼 울다가 웃다가 고독은 나무처럼 자라고 계절은 바꾸어 타고 먼먼 바다로 헤엄쳐가는 물고기가 수면 밖으로 제 그림자인 양 쳐다보는 나무는 엄마라는 구멍처럼 고독합니다 가엾은 당신 나의 엄마들 끝끝내 삶은 죽음일 테지만 죽기 위해 제 기원을 찾아 뭍으로 돌아오는 거대한 포유동물처럼 젖이 아픈 계절입니다
* 이별의 재구성 / 창비, 2009.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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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 찾아든 가을병 앞에 앓아누을 것입니다.
지천으로 번져드는 익은 고독단풍 앞에서 켁, 켁, 켁, 기침을 할 것이며
결국은 호되게 그 '엄마'를 목놓아 부를지도 모릅니다.
귀향하는 연어떼처럼
그렇게 그렇게 깊은 가을의 강을 건널 것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깊은 가을병 앞에서, 초록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