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영역다툼 [허연]

초록여신 2009. 9. 13. 21:12

 

 

 

 

 

 

 

 

 

 

 

 까마귀가 사람을 공격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나라에서 산다. 며칠째 내 방 창밖에서는 까마귀들의 영역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날. 사랑은 오기도 하고 가기도 했으며, 신념은 식욕만큼이나 덧없었고, 싸구려 중국식당 만두에서는 거미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몇 달째 벽에 붙어있는 선거벽보의 남자는 점점 말라비틀어져 갔고, 말문을 열 듯한 입에는 탈색된 풍선껌 하나가 붙어있었다. 사람들은 진흙사태처럼 전철역에서 쏟아져 나왔고, 몇은 방뇨를 위해 골목을 찾아 들어갔으며, 몇은 복권 판매대에 줄을 섰다. 골목길 외등이 깜빡거릴 때마다 긴장한 까마귀는 치열하게 울어댔다.

 

 

 모두 다 까마귀의 영역에서 벌어진 일이다.

 

 

 

 

* 시작詩作, 2009년 가을호 [오늘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