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의자 [이정록]

초록여신 2009. 9. 1. 06:29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의자, 문학과지성사(2006)

 

 

.......

부모님께서 평생의 의자이자 후원자였듯이

힘들고 기쁜 세상을 살아가다가

가끔

쉬어가고 싶을 때

그 필요한 존재가 <의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참외에게도 호박에게도 의자인 똬리가 필요한데

인간에게야 오죽 그 필요성이 많을까 합니다.

시사랑이

공원에 있는 긴 의자처럼

좋은 풍경이자 쉼터이자 비타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의자에 잠시, 초록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