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考) ....... 유안진
알만 먹으면 지느러미나 날개가 돋치는 듯 엘러지가 도지
는데, 메추리알 한 접시를 더 가져다주면서 많이 먹고 알
부자가 되란다
알부자! 그렇지, 알짜배기, 알곡, 닭알(달걀), 새알, 콩알,
불알, 눈알, 얼음알... 심지어는 물(水)의 물알까지 알이기
를 바라는 기원이니, 알이 좋을 수밖에 없는 까닭도 많지
고주몽은 붉은 알에서 나왔고, 붉은 끈에 매달린 여섯 개
의 알에서 나온 6가야의 김수로왕, 큰 알 박(?)에서 나온
박혁거세와, 김알지 석탈해도 알에서 나왔다지, 高을라
深을라 夫을라는 국내 최대의 알터인 제주도의 삼성혈(三
姓穴)에서 나왔다고 지금도 관광지가 되지
이런 설화에서 먹고 난 달걀 껍데기도, 삼(대마초)의 줄기
에 길게 꿰어 부엌문 위에 걸어두면, 물동이 이고 드나드
는 아낙에게 알의 효험이 유감 된다는, 주술적 속식(呪術的
俗信)도 있었고
곳곳에는 알터 바위가 많아, 바위구멍에 고인 빗물에 달
빛이 비칠 때 그 물을 마시면, 달과 물의 음력(陰力)으로 잉
태된다는 기자(祈子) 속신도 있었고
새해 첫 용날 용시에 우물물을 퍼마시는 용알 뜨기와, 경
칩 전후로 개구리알 먹기와, 봉의 알이나 꿩알 같은 알꿈
은 비범한 인물의 아들태몽으로 해석되었으며, 흙으로 거
대하게 알봉(卵峰)이라는 인공알을 만들어 마을의 허약한
지세를 비보(裨補)도 했으니
알이야말로 고향중의 고향이지, 알답다는 아름답다라는
뜻, 태초에 알이 있었지, 자궁 속 난자도 알집 속 알이라,
우린 모두 난자에서 나왔는데도, 새알이든 생선알이든 알
만 먹으면 이상해져, 오늘밤 알 슬 일 있어 줄라나?!
* 유안진 민속시집 『알고(考)』
유안진은 음양오행사상을 비롯하여 조상숭배, 풍수지리, 성기숭배, 언령숭배 등이 배어 있는 재래적인 풍속사를 근엄한 교사의 음성이 아니라 정겨운 이웃 할머니의 음성으로 들려주고 있다. 우리의 민속사를 현재적 삶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민속적 전승의 화법에 실어 조근조근 깨워내어 살리고 있다. 이 땅의 조상들이 전승해 온 삶의 양식, 철학, 가치, 정서, 지혜 등이 배어 있는 삶의 덕목을 오늘날 다시 환기하고 일깨워서 풍요로운 공동체적 삶을 향유하고자하는 시적 의도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 세계에 귀 기울이면, "혹자는 아주 통쾌하다고 했고/혹자는 그래서 나라를 빼앗겼구나 했고.혹자는 그래서 과거는 과거만이 아니라/현재이고 미래라고도 하" (「거울인가 구닥다리인가」)게 되는 제각기 서로 다른 추임새를 넣게 된다. 이처럼 어느새 독자의 신명을 자신의 시적 공간 속에 끌어들이은 것은 우리 민속사의 저력이면서 동시에 40여 년의 시적 연륜을 넘어서는 유안진의 난숙한 저력이다.
ㅡ 홍용희(문학평론가)
.......
알에 대한 역사적 속신들을 많이 알고 이 시 「알고(考)」를 읽는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우리의 민속학도 이렇게 시 속에서 생생하게 녹아질 수 있다는 자체에 감동을 느낀다.
이런 류의 시들의 더 많이 나와서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알고(考)』를 통해 알에 얽힌 역사를 알아가다, 초록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