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비파 소년이 사라진 거리 [이철성]

초록여신 2009. 7. 24. 09:52

 

 

 

 

 

 

 

 

 

 

거리의 비파 악사 소년과

북을 치는 어린 여동생

소년의 신들린 노래와 연주는

거리를 한순간 평정했다.

사람들은 입을 닫아걸고

거리는 숨겨진 귀를 열고

지긋한 할머니의 다리가 행려병자처럼 춤추고

주머니의 돈들이 춤추며

악사의 가방으로 들어갔다.

노래는 끝이 없고

눈 감은 소년의 연주는 끝이 없고

가슴의 귀를 열어버린 사람들은

성급히 돈 가방을 닫고 사라지는

소년의 날 선 눈초리를 보지 못했는가.

음악이 사라진 거리

사람들은 바람에 날리는 빈 봉지처럼 서 있다.

ㅡ 중국, 카슈가르

 

 

 

* 비파 소년이 사라진 거리, 문학과지성사(2009.7.)

 

 

 

 내 평생의 숙제는 여행이다. 매일 여행을 그리워하고, 꿈에서도 여행이다. 한번은 크게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섰다. 걸어서 걸어서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또 걸어서 파키스탄의 남쪽 도시 카라치의 해안에 다다랐다. 인도양의 태양이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낯선 땅 이방인들의 넓은 하의가 따뜻한 바람에 부풀어 올랐다. 나 또한 부풀어 올라 인도양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육신은 이미 많이 지쳐 있었다. 멈추지 않는 걸음, 그 환장할 걸음걸음은 왜인가!

 

 

 여행의 끝은 항상 집이다. 허접스러워진 짐들은 내려놓고, 뜨거운 샤워를 하고, 아내와 딸아이의 곁눈질을 피하며, 여행은 마치 꿈의 한 조각처럼 사라진다. 한밤중에 눈을 떠 어둠을 바라보며, 여행의 끝이 들판 한가운데이기를, 바람 한가운데이기를, 낯선 마을의 처마 밑이기를 바라다가, 또 낯선 여인의 낯선 향내의 품이기를 바라다가, 아내와 딸아이의 코골이에, 나는 아직 여행 중이라는 생각. 그렇게 생각하니 아내의 얼굴이 아주 낯설어 보이고, 딸아이의 얼굴이 중국 남방 소수민족의 아이처럼 꺼칠해 보이고, 어둠의 창문을 빼꼼히 여니 집은 휘영청 달빛 아래 인도양의 검은 바다를 순향하고 있고나.

 ㅡ시집, 뒤표지 <시인의 산문> 중에서.

 

 

.......

비파 소년이 떠난, 음악이 사라진 거리의 황폐함 앞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었을까?

 

생뚱 다른 이야기이지만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침몰하는 마지막까지

죽음의 아수라장 속에서도

연주는 계속되었다.

그 장면 앞에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작은 아름다움으로 더욱 빛나는 것이 더 많다.

우리는 늘 애써 외면하고 살았지만,

 

여행은 계획없이 떠날 수 있지만 곧 부메랑처럼 되돌아 온다.

집으로.

간혹 드물게 여행지에서 돌아올 수 없는 사람도 있고, 그곳에 정착하는 사람들 또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서만은 가족과 어우러지기를

여행이 잠시지만 중단되기를 바란다.

(여행 후-우리는, 초록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