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오후 세 시 [안현미]

초록여신 2009. 7. 19. 15:04

 

 

 

 

 

 

 

 

 

 

 

시간을 오려내는 거예요

오후 세 시는 권태롭다면서요?

 

 

스케치북 안에서 아버지는 외눈박이 거인이에요

엄마가 물을 주고 있는 꽃밭엔

갈라진 혓바닥 같은 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어요

싸립문으로 구렁이가 들어와요

쉬, 쉭, 쉬이익

놀란 계집아이가 울음을 터뜨려요

목젖이 보이는 불안이 솥으로 뛰어들어요

뱀 껍질, 눈알, 크레용, 불안을 섞은

검은 솥이 통째로 끓어요

어디선가 비릿한 냄새가 스며들어요

문밖에서 흔들리는 종소리가 주문 같아요

외눈박이 거인이 팔팔 끓는 솥을

계집아이 머릿속에 쏟아 부어요

아이의 하얀 원피스가 피로 물들어요

그러자 스케치북 안에선

구렁이를 탄 계집아이가

오후 세 시로 날아가요!

 

 

 

 

 

* 곰곰, 랜덤하우스중앙(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