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서정범 교수의 특별했던 수업을 기억하며
국어학자이자 수필가인 서정범 경희대 명예교수가 14일 별세했습니다. 가끔 TV에 베레모를 쓰고 나와 어원을 설명하던 선생님의 모습을 재밌게 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요,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며 딱 한 번 서정범 선생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벌써 한 8년 전이라 과목명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꽤나 특별했던건 그분의 수업 방식이었습니다. 한시간 반 수업시간 중 교재를 중심으로 이론을 배우는 시간은 전체의 반 정도이고 나머지 반 이상은 마치 어린시절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듣고있는 듯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껏 체득한 지식을 단지 책 속에 들어있는 글자가 아닌, 일상 생활의 일부분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해주셨죠.
▲ 故 서정범 교수 (사진출처: 미리내 문학관) © 독서신문
선생님께서는 일단 매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이 앉아있는 자리의 수맥을 검사하시고 안좋은 곳에 앉아있는 학생은 다른 자리로 옮겨주셨습니다. 수맥이 흐르는 곳에 앉아있으면 더 피곤하고 목이 아프시다며 선생님 자신도 꼭 수맥검사를 한 뒤 그날 있을 자리를 결정하셨습니다. 진동이 되는 가죽끈(?)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시며 체크를 하셨는데, 수맥이 흐르는 곳에서는 그 끈이 마구 흔들렸습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도 진동이 가능한 물건이면 수맥체크가 가능하다고 하셔서 저는 그 시절 잠자기 전 침대 등 특정 장소 위주로 방울 달린 머리끈 등을 활용해 수맥체크를 했었습니다. 전 아직도 수맥에 대해 잘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지만 신기하게도 측정기구(?)가 특정 장소에서만 움직이는 것을 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정범 선생님이 많이 하신 얘기 중 하나는 꿈 해몽과 관련된 것이었는데요, 구체적으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신비롭고도 공감이 가는 얘기였고, 그 당시에는 내가 그동안 몰랐던 또 다른 세계를 엿본것 같아 상당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은 자기 방어적 보호본능에서 꿈을 꾸는 것이고, 모든 꿈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왜 그런지에 대한 상세한 이유와 해설을 해주셨습니다. 그동안 우연의 일치라거나 신비로운 현상 정도로만 생각했던 부분을 학문적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꿈과 관련해 상담받고 싶은 학생들에게 때때로 한 명씩 상담도 해주셨는데, 어떤 꿈에도 신기하리만치 그에 딱맞는 해석을 해주셨습니다. 단, 힘이 모자라 원하는 사람들 얘기를 다 들어줄 수 없는 것을 미안해하셨습니다.
서정범 선생님 수업에서 무속인들에 대한 얘기 역시 빠질 수 없는데요, 선생님은 무속인들이 '결핍'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무속인을 만나왔지만 자신이 원해서 무속인이 된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유전적으로나 가정적, 환경적으로 꼭 어떤 부분이 결핍된 사람들에게 신이 내리는 것이라고...예를 들어 자신을 지켜줄 부모가 없을 때 외부로부터 예지능력과 치유능력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수업을 들으며 무속인에 대한 편견을 상당부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9시 수업인데도 선생님께서는 상당히 일찍 도착하셔서 항상 먼저 학생들을 맞이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같은 경우 집이 멀어 특히나 아침 수업이면 시간을 맞추기 힘들어했는데, 이 수업은 지각을 할 수 없어 힘겨웠던(?) 기억도 나네요. 여러모로 기다려지고 기억에 남는 수업이었고 지금 이렇게 10년 전 수업을 기억하듯, 앞으로도 그 특별했던 강의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