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함부로 그늘을 엿보다 [고영]

초록여신 2009. 7. 15. 08:06

 

 

 

 

 

 

 

 

 

 

 

배롱나무 꽃그늘을 몰래 기웃거렸네

유홍에 찌든 내 체취가 행여 꽃밭을 흐릴까봐

가까이는 말고 그냥 멀리서,

땡볕에 나앉은 두꺼비처럼 바라만 보았네

 

 

그렇게 속절없이 한여름이 흘러가는 동안

몇 마리의 새가 꽃그늘 속에서 사랑을 나누다 날아갔고

어린 꿀벌이 반쯤 벌어진 꽃봉오리에 갇혀

날개가 펴진 채로 말라갔네

태양의 인두질에 영혼마저 까맣게 타버린 개미들

시어빠진 꽁무니를 끌고 꾸,역,꾸,역,

무덤 속으로 꺼져 들어갔네

 

 

꽃과 함께 소멸하는 여린 목숨들을 보며

자꾸 발이 시렸지만

나는 끝내 배롱나무 꽃그늘에 들지 못했네

순하디순한 꽃빛만 기웃거리다

꽃에 갇혀 죽은 영혼은 죽어서도 행복할 거라고

땡볕에 나앉은 두꺼비처럼 중얼거렸네

여름 내내 중얼거렸네

 

 

 

 

*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