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살구나무 목탁 [이정원]

초록여신 2009. 7. 2. 20:31

 

 

 

 

 

 

 

 

 

 

 

 

출가한 살구나무가 있다

백 년 동안이나

봄이면 열꽃으로 화들짝 들뜨다가

가문의 紋章처럼 열매들 쏟아내다가

불현듯

제 몸의 생로병사가 궁금해졌나?

몸뚱이 잘라버리고 뿌리만 오롯이 고행에 들었다

연못 속에 가부좌 틀고 앉아

진창 속 삼년을 견뎌 진흙과 하나가 되었다

붓다가 새벽별 보고 크게 깨달았듯이

수면에 뜬 물별을 보고

아라한이 된 살구나무 뿌리가

법륜을 굴린다

텅 빈 목구멍 속에

살구꽃 벙그는 소리, 잎 지는 소리

가지에 눈 얹히는 소리

연잎에 물방울 구르는 소리

또옥, 또드락, 따그르르르,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如如하다고

파르라니 삭발을 하고 대웅전 법상에 앉아 설법을 한다

南無 살구나무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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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경기 이천 출생. 인천교육대학 졸업. 2002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2005년 『시작』 등단. 2009년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2009년 경기 문화재단 문화예술진흥지원금 수혜.

 

 

 

 

* 내 영혼 21그램 / 천년의시작, 2009.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