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Lullaby [강성은]

초록여신 2009. 7. 2. 19:17

 

 

 

 

 

 

 

 

백년에 한 번씩 깨어난다는 눈의 거인 얘길 해줄까

지구만큼 오래 산 눈의 거인은

봄이 시작될 무렵 잠에서 깨어나지

거인은 무수한 꿈을 꾸었기 때문에

사방에서 피어나는 붉은 꽃과 나비도

오십억년 전부터 떠 있는 뒷모습 없는 달도

공처럼 굴러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믿지 않아

꿈에선 늘 있는 일이니까

거인은 꿈속에서도 절대로 웃거나 울지 않아

눈물을 흘리면 거인의 몸은 홍수로 녹아내리거든

심장이 떨리면 사악한 눈보라가 되어 휘날리거든

그저 무감하게 바라볼 뿐

하지만 햇빛이 발자국을 발등으로 바꿀 때쯤에야

꿈이 아니란 걸 알게 되지

그래서 맘껏 눈물도 흘리게 되는 거란다

얘야, 그렇게 슬픈 얼굴 하지 마

거인도 너처럼 하룻밤을 자라고 있을 뿐이란다

잠든 어느새 삼만육천오백 밤이 지나 있고

출구 없는 꿈들이 몰려왔다 몰려가는

질긴 하룻밤

얘야, 너무 두려워하지 마

누구나 잠들면서 자라는 거란다

어서 가서 백년 동안 꿈을 꾸는

꿈속에서도 꿈꾸지 않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차가운 심장을 가진 사나이

햇빛을 만나면 눈물을 흘리는

외로운 사나이의 결정(結晶) 속으로 들어가렴

얼었다 녹았다 다시 얼어가는

얘야, 얘야, 늙은 나의 요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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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은

1973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2005년 문학동네신인상에 「12월」외 5편의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현재 '인스턴트'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 창비, 2009.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