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모래를 먹고 자라는 나무 [오채운]

초록여신 2009. 6. 27. 23:54

 

 

 

 

 

 

 

 

 

 

하얀 사막에 전화가 있네

선인장처럼

모래밭에 전화가 자라고 있네

전화를 걸기 위해

바다도 멀리하고 사막을 걷네

무릎을 꺾는 모래

당신을 향해 열려 있는 모래 속의 먼 길

그 길을 걷네

홀로 부서지는 파도

쌓여가는 모래

모래를 먹고 자라는 나무, 빛나는 전화

 

 

 

 

* 모래를 먹고 자라는 나무, 천년의시작(2009. 5. )

 

 

 

 

 윤동주의 시가 슬픔을 안겨주듯이 오채운의 시도 슬픔의 모래를 강물 안쪽에 텁텁하게 쌓아 놓는다. 그는 절규하지도 않고 통곡하지도 않는데 가라앉을 듯 잠길 듯 서투르게 물 위를 걷는 그의 뒷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모처럼 터져 나온 그의 언어는 덧없이 공중으로 휘발하고 하늘로 솓던 맑은 피리 소리도 한갓 환청으로 끝난다. 그는 미래에 기대를 걸지 않고 오히려 과거를 기다리는데, 그 기다림의 시간도 잊어야 할 아픔이 생기기 전인 자궁 속 태아의 시간이다. 화끈한 연애의 환상이라도 가져보았으면 좋으련만 그에게 다가오는 것은 삼년 전에 죽은 애인의 불길한 육체일 뿐 모래로 서걱이는 세상에 내딛는 발길은 차갑다. 이 모래밭 세상에서 어떻게 버티느냐 하는 질문이 그의 시다. 그 질문에 가까스로 힘겹게 온힘을 다 바쳐 쥐어짜낸 대답이 바로 또 그의 시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정직하다. 그 정직함은 그렇게 아픔을 거쳐 온 사람들의 등짝을 쓰다듬는 위안의 힘을 지닌다. 그 정직함이 아름다운 채색을 두른다면 사막에 무지개가 뜨는 기적도 실현될 것이다.

ㅡ 이숭원(문학평론가. 서울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