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시인 2 [오세영]
초록여신
2009. 6. 26. 09:00
시인은 천명(天命),
사지가 잘려 슬픈 뱀.
비록 입이 있다하나 소리를 낼 수 없어
혓바닥은 항상 허공을 낼룽거린다.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이토록 하늘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냐.
한 생을 진흙탕에서 딩굴며
안으로, 안으로 삼켜야 하는 그 붉은 눈물,
저리가거라, 징그러운 뱀,
돌팔매에 쫓기는 그 원통함인들 또
어찌하겠느냐.
수화(手話)로도, 구화(口話)로도 호소할 길 없어
푸른 하늘을 향해 오늘도 이처럼
온 몸으로 글을 쓸 수 밖에 없다.
시(詩)일까, 산문일까,
봄 되어 얼음 풀리고
산나리, 초롱꽃은 활짝 웃는데
꿈틀꿈틀
맨땅에 글씨를 쓰며 기어가는 풀숲의
외로운
꽃뱀 한 마리.
* 바람의 그림자, 천년의 시작(200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