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없다 [이선영]

초록여신 2009. 6. 17. 06:21

 

 

 

 

 

 

 

 

 

 

 

 내가 결혼하던 날은 아버지로부터 해방되던 날이었다

 그 결혼을 위해 나는 아버지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아버지와는 전혀 다를 것 같은 새로운 남자를 선택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

 

 

 아이들이 커 가면서 집안의 평화는 깨어졌다

 아이들을 자기의 분신으로 키우려는 것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의 야심이다

 여자에게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 이미 분신이니까

 

 

 가정이라는 꽉 짜인 서랍장,

 

 

 나에겐 아버지의 망령이 되살아났고

 아이들에겐 아버지라는 조냊의 참을 수 없는 삐걱거림이 시작되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남자는, 새로운 아버지는 없다!

 

 

남자라는 찰나의 꽃, 아빠라는 먼 바람결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한때 내 청춘의 우상이었던 건 내 생의 어두운 전조다

 그 고독하고 우수에 찬 이미지는 그대로 아버지의 편린 아니었던가

 내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아니듯 그러나 아버지는 결코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아니었다

 

 

 아, 이 몸쓸 이상과 몸쓸 취향이라니!

 

 

 내가 두 번째로 만난 몽고메리 클리프트 속에도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없다

 왜냐하면 몽고메릴 클리프느 영화 밖에서는 몽고메리 클리프트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니까

 영화 밖에서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운 어느 새벽 발가벗은 채로 거리를 내달리기도 했었다

 

 

 

 

* 시에 2009년 여름호, 시와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