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약속 [정일근]
초록여신
2009. 6. 17. 05:46
늦여름 장마비 속에서
흰 꽃을 밀어올리는
수련睡蓮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만든 집과 집 속의 사람이
속수무책으로 젖고 있는데
한사코 자신의 야윈 몸 위로
화사한 꽃을 피우려 애쓰는
착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비의 굵은 손바닥 후두둑 후두둑
세상의 등을 때려
큰 절집과 열세 채 작은 절집 품은
영축산 통도사도 단단한 결가부좌를 풀고
눅눅한 오수에 빠져드는데
산山 번지도 사라진 빈터
깨어진 돌확 속에서
단정한 앉음새로 앉아
가을이 오기 전에는 꽃을 피워야 한다는
그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찬 빗속에서도 제 이름 부르는 소리에
예, 라고 대답하며 수런거리는
수련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