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어떤 이유 [김은경]
초록여신
2009. 6. 10. 17:21
어느 시절 사람들은 외로워서 공부하고 외로워서 꽃을 줍고 외로워서 길지도 않은 달의 손톱을 깎아주다 문득 외로워져 먼 데 산으로 떠났지
그래도 외로워서 돈 벌고 외로워서 결혼하고 외로워서 이혼하고 외로워서 살도 찌고
외로워서 봄을 좌절 외로워서 불법 유턴 외로워서 종합병원 외로워서 술도 취하는 밤, 밤, 밤
누구도 증언하지 않았지만 불륜 치정 끔찍한 사기극도 실은 극한의 외로움에서 비롯했단 얘기
그 불치의 병이 없었으면 시도 음악도 진즉에 죽었을 거다
외로워하지 않았더라면 고흐도 사티도 그냥 다 살았을 거다
모든 아름다움 그 어떤 죄도 결국 외로움 때문인 것
산 목숨은 누구나 외로우니까 그래서 위험하니까
나는 오늘도 너를 사랑한다
고백건대 태어나 한번도 외롭지 않은 적 없었으므로
나는 오늘도 폭발 직전의 먹구름을 시로 바꾸어 읽는다
통곡하는 모든 존재는 내일에도 여전히 음악으로 살 것이다
오늘도 결핍이 나를 밀어간다 꺌꺌, 당신이라는
외계의 구멍에 쑥쑥 성기 같은 손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 미네르바 2009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