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누가 고요의 얼굴을 봤는가 [홍신선]

초록여신 2009. 6. 8. 03:31

 

 

 

 

 

 

 

 

 

 

누가 공중에 꾸불텅꾸불텅 장장하일(長長夏日) 도수로(導水路)를 파내놓는가

 듬성듬성 선 상수리나무 우듬지와 속 가지에서

 그 건너 나무들의 곁가지와 우듬지께로 건너뛰는

 도수로에는 온종일 할딱할딱 딸꾹질하며 떠 흐르는 쓰람 매미 소리

 고요할 때 고요 속으로 더 깊이 침하해야 한다는 듯

 곳곳에 도열한 나무 벽 틈으로 스며드는

 그 쓰람 매미 소리 속에는

 더러 참수형으로 모모의 대갈통 떨어지는 소리

 예 저기 부서지고 남은 문짝들 돌쩌귀 찌걱이는 소리......

 

 

 시골 아파트 단지까지 신불자(信不者)로 떠돌다 들어온

 땟국 꾀죄죄한 한 그루 송장풀이

 길 한 켠으로 비켜 누운 채 매미 소리 돋우어 베고

 보여주는

 대황(大荒)의 고요

 이 여름날의 욱신거리는 적요여

 

 

 

 

* 우연을 점 찍다 / 문학과지성사, 2009.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