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강 건너 불빛 [이덕규]
초록여신
2009. 6. 2. 07:31
가까스로 도망쳐 온 듯하다
쫓기고 쫓기다 간신히 강을 건너
주저앉은 짐승처럼 잔뜩 웅크려 엎드린
앞산, 중턱 옆구리께
외딴 불빛 새어 나온다
사납게 물어뜯긴 자리,
벌겋게 농익어 번져가는 신열처럼
욱신거린다 저 덧난 상처의
중심에 깊게 박힌 심, 넓게 짚어
꾹 짜 울리면 앞산이 움찔
강물이 잠깐 멈췄다가 출렁 흘러가고
뜨거운 백 촉짜리 알전구 같은
피고름 덩어리 하나 불쑥
솟아올라올 것 같다 가끔
고개 돌려 화농처럼 희미하게
흘러내리는 불빛 핥을 것도 같은데
검은 산은 끝내 꼼짝하지 않는다
참 뻐근하게도 곪아서
씀먹씀먹, 밤마다
잠 못 이루는 통증처럼 거기, 그가 산다
* 밥그릇 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