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송찬호]

초록여신 2009. 5. 27. 20:32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입안의 비린내를 헹궈내고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

그의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건만

손을 핥고

연신 등을 부벼대는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

 

 

나는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 문학과지성사, 2009. 5. 15.

 

 

 

 근래 내가 쓰다 만 시 중에 「쑥부쟁이」는 것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뒤에 이웃 동네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가 있는데, 가을이면 길 양쪽으로 쑥부쟁이가 지천이다. 나는 이 쑥부쟁이 시를 써보기로 했다.

 쑥부쟁이에 대해 떠오른 착상으로, 먼저 '쑥부쟁이 비빔밥'과 '쑥부쟁이 파스'가 있었다. 쑥부쟁이에서 맑은 가을 이슬과 햇살과 바람을 넣어 만든 고소한 비빔밥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고단한 일상에 소염 진통 효과가 있는 파스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쑥부쟁이」라는 제목 아래 두 편의 시를 완성했다. 그러나 그 두 편 모두 마음에 드는 시가 아니었다. 쑥부쟁이에 적당히 삶을 위무하고 세상을 다독이는 말을 얹어 시는 무난하게 나왔지만 거기에는 새로움이 없었다. 그리고 이미 그런 유(類)의 시를 여러 번 쓴 적이 있어, 반복되는 시의 습관이 싫기도 했다.

 하여, 이렇게 시 쓰기의 갈등 관계에서 태어난 시. 나는 그것을, 폐기되거나 다시 씌어져야 할 운명으로서, 그 시가 완성본이라 하더라도 '쓰다 만 시'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돌아보면, 내가 쓰다 만 시가 어디 「쑥부쟁이」뿐인가.

 나는 「쑥부쟁이」를 다시 고쳐 쓸지도 모르겠다. '쑥부쟁이 촌장'이나 '쑥부쟁이 모자'로 아예 다르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집을 냈다는 핑계로 한동안 긴장이 풀어질 게 분명한데, 앞으로 내 시는 유행이나 새로움에도 주눅 들지 않고 구름처럼 가벼워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ㅡ[시인의 산문], 뒷표지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