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캔맥주를 마시며 [복효근]

초록여신 2009. 4. 30. 23:11

 

 

 

 

 

 

 

 

 

 

맹인들도 맥주를 마시는구나 겨우 생각했네

캔맥주 입구에

돋을새김해 놓은 점자를 만지며

맹인은 만져만 보고도 아는 그것을

만져보고 눈으로 보고도 알지 못하네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고 살며

마셔야 할 이유도 모르는 채 마시는 나를

청맹과니라 이르는 듯하네

그렇지 눈뜬 봉사란 말 있잖은가

사십을 훨씬 넘어서도

철없기는 아직 사춘기라

지나온 길 깜깜하고

헤쳐갈 길 아득하여

술이나 마셔야 턱없는 힘이 솟네

솟는 힘 쓸 곳을 안다면야

사춘기보다 윗길이겠지만

겨우 빈 캔을 세워놓고 뒤꿈치로 찌그러뜨리는 정도라니

그만 하릴없이 눈 감아볼밖에

눈 감아 그려볼 유토피아라도 있다면

이대로 더 어려져서

어두워진 세상 점자처럼 더듬으며

다시 한번 살고 싶네

 

 

 

 

 

* 마늘촛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