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책의 등 [고영민]

초록여신 2009. 4. 27. 20:36

 

 

 

 

 

 

 

 

 

 

책꽂이에 책들이 꽂혀 있다

빽빽이 등을 보인 채 돌아서 있다

등뼈가 보인다

 

 

등을 보여주는 것은

읽을거리가 있다

아버지가 그랬고

어머니가 그랬다

절교를 선언하고 뛰어가던

애인이,

한 시대와 역사가 그랬다

 

 

등을 보이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다

잠깐 다른 곳을 보는 것이다

옷을 갈아입는 네가

부끄러울까봐

멋쩍게 돌아서주는 것이다

 

 

 

 

 

 

* 공손한 손

 

 

.......

그렇다.

시집들이 나에게 등을 보인다.

밋밋한 시집의 등이다.

그래서 디스플레이를 위해서도 등을 이쁘게 만들어야 한다.

돌아가던 눈동자가 멈추는 순간,

그 시집은 오늘 빛을 보는 것이다.

등을 보이는 것들은 모두 빛날 수 있다.

나에게 등을 보이라,

그럼 구원해 줄 것이다.

(오늘도 시집의 등을 살피는, 초록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