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청동정원 [최영미]

초록여신 2009. 4. 1. 09:36

 

 

 

 

 

 

 

 

 

 

청동으로 빚은 나무가 못에 걸려 있네.

휘어진 가지에 사이좋게 마주 앉은

작은 새 한 쌍, 위에 매달린 종을

건드리면 청아한 울림이 떨어지지

 

 

그 밑에 누워서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먼지가 이끼처럼 내려앉은 계절을 보내고

푸르던 잎이 퇴락한 왕조의 구릿빛으로 변하는데

나 말고는 지나간 사람이 없네

 

 

배반의 노래가 거실에 쌓이던

어느 날 나는 알았네

울리지 않는 종을......

수상한 그림자만 얼씬거리는

녹슨 청동정원에서

새와 단둘이 오래 살았네

 

 

문이 만 번쯤 열리고 닫히고

연애시를 백 편쯤 만드는 동안

누군가 천천히 지나가며

방울을 쓰다듬는 사람이 없어,

 

 

천둥처럼 울리기를 기다리며

단단히 문을 걸어잠그고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누워 있네 차가운 바닥에

두 마리 새들이 하나로 겹쳐져,

새도 나무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 도착하지 않은 삶 / 문학동네, 2009.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