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상처가 나를 살린다 [이대흠]
초록여신
2009. 3. 31. 10:15
모서리를 돌아서다가 튀어 나온 돌멩이를 보지 못하고 무릎이 찍혔다 아직 손등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는데 몇 방울 피 맺힌 것을 보고 아내는 칠칠맞다고 했다 나는 몸에 큰 흉터 있으면 오래 살 거라던 점쟁이의 말을 들어 다 내가 살아 남으려고 액땜한거라 말했다 기억의 아슴한 산모롱이를 돌아 나올 때부터 지금까지 몸의 어디건 상처 하나는 가지고 살아왔다
뒤돌아보면 상처의 길이 아득하다 지나간 희망이나 사랑은 모두 내 몸에 붉은 금을 그었다 아프다 내 오랜 사랑인 그대를 생각하면 세상을 다시 살고 싶어진다 아픈 것이 어디 내 몸뿐이랴 내 발에 채인 돌은 느닷없는 발길질에 얼마나 놀랐을까 나와 만나 깨어지거나 버려진 자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나와 만나면 모든 것이 망가졌다 타버린 담배 폐차된 자동차 망가진, 그대
으스러지거나 커다란 흉터가 남은 게 아닌데
작은 상처에 아파했던 것은
죄스러운 일이다 혼자인 밤이면
상처 입은 짐승들이
주위를 가득 채운다
따뜻하다
* 상처가 나를 살린다, 현대문학북스(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