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위 내 집 [김영찬]
집 짓고 싶다
벚꽃 환하게 피어 꽃등 켤 무렵 나는
나의 들창에
초승달 예쁘게 램프 걸어놓고
미루다가 읽지 못한 책이나 실컷 읽는 대신
바람의 꼬리를 붙잡고 멀리 떠나는
여행이나 하고 싶다
벚꽃 피었다 간 자리에
버찌들은 검은 활자로 익어 법석을 떨겠지만
세상에 나온 책을 다 읽는 건 지겨워라
검붉은 열매 이전
철없는 계집애가 숙녀가 되겠다고
젖꼭지 아파올 때처럼
초록빛 아물 때가 나는 눈물겹다
내 양쪽 날개 위
투두둑 먹물 쏟아 붓는 버지들의 극성 때문에
나는 할 수 없이 버찌잉크를 찍어
시를 쓸 수밖에 없지만
벚나무 위 내 집엔
꽃나무 울타리 친 침대가 놓이고
구름 레이스 침대보를 새로 갈아놓아
나하고 하룻밤 동침을 원하는
봄날
나무 위에 내 집 짓고 싶다
산뜻한 벚나무 위 벚꽃 환하게 피어
꽃등 켤 무렵
*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 / 황금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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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
충남 연기군 출생. 한국외국어대학 프랑스어과를 졸업했다. 패기만만한 문학청년이었으나 정작 졸업 후 입사한 재벌회사(종합무역상사)의 해외지사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및 이집트의 카이로 등지에서 1977년부터 1984년까지 근무했다. 2002년 계간 『문학마당』과 2003년 격월간 『정신과표현』에 시가 있는 수필을 게재, 연재한 것을 계기로 작품 활동 시작. 1991년부터 현재까지 카펫 수출 전문회사인 <이젠무역>을 운영하며 시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