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벚꽃나무 아래 잠들다 [김선태]

초록여신 2009. 3. 27. 09:13

 

 

 

 

 

 

 

 

 

 

 어느 봄날이던가 선암사 입구 벚꽃나무 아래 기대어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에서 소복한 계집들이 나비처럼 날아내렸습니다 내려와선 온갖 교태로 술을 따르고 춤추며 노랠 불렀습니다 나는 그만 흥건해져서 그미들을 잡으려 이리저리 팔을 뻗었으나 허사였습니다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그미들을 쫓아 종일 들판을 쏘다니다 그만 돌부리에 넘어져 화들짝 잠이 깼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계집들은 온데간데없고 벚꽃나무에 백설만 난분분했습니다 눈사람이 다 된 나를 보고 행인들이 낄낄거리며 지나갔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염불소리 꿈결처럼 들려왔습니다

 

 

 

 

* 살구꽃이 돌아왔다, 창비(200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