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꽃피는 소리 [손진은]

초록여신 2009. 3. 25. 10:07

 

 

 

 

 

 

 

 

 

꽃이 열리고 있었다

한없는 어둠이 지켜 주고 있는 밤

찻잔 받쳐 든 손 주변으로 모이는 떨림으로 알았다

눌렀다가는 금세 빠져 달아나는 광택 없는 나날

질실할 만한 두껠 가볍게 들어 올리며

섬광처럼 존재의 항구를 열 때

외피의 그림자들은 주변을 싸고 돌고

오랫동안 그 앞에서 머뭇거렸던 기회의 경계선 지우며

부재 속에서 눈뜨는 검은 진주, 말들

결별의 감미로움 속에

세상은 다른 쪽으로 빠져나가고

딱지 앉은 자아의 살가죽 뚫으며

꽃이 하나 불쑥 떠올랐다

 

 

 

 

 

*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민음사(1992, 2007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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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1959년 경북 안강 노당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87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돌」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고』『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가 있다.

 경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