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시래기를 위하여 [복효근]
초록여신
2009. 3. 22. 08:46
고집스레 시래깃국을 먹지 않던 날들이 있었다
배추나 무의 겉잎을 쓸 데 없는 것을 말린 것이 시래기라면
쓰레기와 시래기가 다른 게 무엇인가
노오란 배춧속을 감싸고 있던
너펄너펄 푸른 잎들
짐승 주기는 아깝고 있는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것
그 중간 어름 바람 속에
늘 빳빳하게 언 채 널려 있던 허접한 빨래처럼
궁색의 상징물로 처마에 걸린 시래깃두름이
부끄러워서였는지도 모른다
난 시래기로나 엮일 겉잎보다는
속노란 배춧속이거나 튼실한 무 뿌리이기만을 꿈꾸었을 것이다
세상에 되는 일 많지 않고 어느새
진입해보지도 않은 중심에서 밀려나 술을 마실 때
술국으로 시래기만 한 것이 없음을 안다
내가 자꾸 중심을 향해 뒤돌아보지 않고 뛰고 있을 때
묵묵히 시래기를 그러모아
한 춤 한 춤 묶는 이 있었으리라
허물어가는 흙벽 무너지는 서까래 밑을 오롯이 지키며
스스로 시래기가 된 사람들 있었으리라
헛헛한 속에 시래깃국 한 그릇이 모닥불을 지핀다
시래기는 쓰레기가 아닌 것이다
* 마늘촛불, 애지(200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