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숟가락 단상 [복효근]

초록여신 2009. 3. 22. 08:37

 

 

 

 

 

 

 

 

 

 

출토된 청동숟가락들은

끝이 날렵한 입사귀 같다

그 숟가락잎사귀가 땅을 뚫고 하늘 높이 자라면

수천수만의 푸른 잎사귀숟가락들이

먼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햇살과

바람과 분과 비와

그리고 구름을 숟가락 질할 터인데

그렇다면 죽음은 얼마나 맛있는 우주의 성찬에

배가 부를 것인가

그러니까 활엽수의 푸른 잎사귀란

푸른 하늘을 저 지하에 퍼 담는 숟가락이겠다

저승 또한 얼마나 환할까

아니 어쩌면

숟가락은 작은 노를 닮기도 해서

아득한 날들에 부장된 숟가락들이 자라서

세상 하늘을 작은 노들로 뒤덮었는지도 몰라

귀 기울이면 나무 우듬지를 타고

들려오는 파도소리 노 젓는 소리

우리 별은 지금 어느 별자리 곁을 헤쳐 가고 있는지

그러니까 숟가락질이란

다른 세상 다른 우주를 퍼 담는 일

머언 또 하나의 우주를 향해 노 저어가는 일

그 어느 쪽이라 해도

숟가락 아니면 이승도 저승도 어렵겠다

 

 

식탁 위에 놓인 숟가락이

어느 먼 세상 가리키고 있다

 

 

 

 

 

* 마늘촛불, 애지(2009. 3)

 

 

 이 시는 '단상'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풍부하고 넓은 상상력의 작용을 보여주고 있다. 시의 발상이 된 것은 출토된 청동숟가락이다. 그 숟가락의 모양이 잎사귀 같다는 데서 시가 시작된다. 만약 그것이 잎사귀라면 쑥쑥 자라서 하늘 높이 올라가 햇살과 바람과 구름을 숟가락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검은 누워 있는 채로 우주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저승이 환해진다. 부장된 청동숟가락은 의례상 놓여 있는 밥 먹는 도구가 아니라 푸른 하늘과 우주를 지하의 망자에게까지 연결하는 매개물인 것이다. 한편으로 청동숟가락은 작은 노를 닮았다. 어쩌면 숟가락들이 모여서 하늘을 뒤덮고, 주검은 그것을 타고 온 우주를 노 저어 다녔을지도 모른다. 귀를 기울이면 노 젓는 소리와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여기서 시인은 생각을 숟가락 자체로 옮겨간다. 숟가락질이란 다른 우주를 퍼 담으며 여행해가는 일이라는 생활 철학을 발견하는 것이다. 즉 삶이란 결국 타인의 삶을 보듬으며 그들에게로 다가가는 일인 것이다. 숟가락질로 상징되는 '밥 먹는 일'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난다는 생각은 다른 생명시에서도 발견되는 것이지만, 이 시에서 돋보이는 것은 그러한 생활 철학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그가 이러한 결론을 끌어내는 과정은 타당하고 자연스럽다. 출토된 청동숟가락의 모양에서 "식탁 위에~가리키고 있다"라는 마지막 부분까지, 생각의 흐름이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그의 시에서 발견되는 생활의 철학들이 타당성 있게 여겨지는 것은 이같은 자연스러움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가 알레고리를 주된 기법으로 하는 다른 시들과 차별성을 가지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ㅡ 문혜원(문학평론가, 아주대 교수), 해설[속 깊은 이해와 타당한 생활 철학]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