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시인 70인

덕장 [김혜수]

초록여신 2009. 3. 9. 08:52

 

 

 

 

 

 

 

 

 

 

담장 안 빨랫줄에

며칠째 걷지 않은 겨울빨래가 널려 있다

마르기도 전에 얼다 녹다

다시 얼어붙은

미처 걷지 못한 빨래 위로 눈발 날린다

 

 

맛이 깊고 육질 뛰어난 황태가 되기 위해선

추위와 바람 속에서 거듭

얼었다 녹았다 해야 한다

담장을 넘지 않으려 애면글면

다시 얼어붙은 눈물은 단단하다

 

 

영하의 공중에 가랑이 벌린 채

내복 바람으로 오래도록

벌 서는 가족들

 

 

가출한 당신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벗어두고 간 팔다리

저 혼자 펄럭이다가

줄 위에서 부르르 떨며

눈발 속에

물구나무 선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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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8년 『세계의 문학『문학의 정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404호』가 있다.

 

 

 

 

* 현대문학 55주년 기념 연재(월,수, 금 연재) / 한국대표시인 70인 - 시, 사랑에 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