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제비꽃 [박용재]
초록여신
2009. 2. 10. 09:56
제 이름은 제비꽃입니다
저는 왜 제 이름이 제비꽃인지 모릅니다
그저 저 광활한 대지 위에서 자라는
들꽃들 중의 하나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넓은 지구상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주 속의 저 수많은 꽃들 가운데
제게 제비꽃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러더니 똑같은 이름의 제비꽃 친구들이 생겨났습니다
모양은 조금씩 달라도 그 이름은 같습니다
제겐 수많은 제비꽃 친구들뿐만 아니라
민들레, 미나리아재비, 질경이, 패랭이꽃이라
이름 붙여진 친구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이름은 특별납니다
단 한 번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름 붙여진 것들은 전부 다 소중하고 귀한 존재입니다
누군가를, 그 무엇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때론 제 이름이 왜 제비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물오리나무, 물푸레나무, 은행나무였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제게 제비꽃이라고 이름 붙여준 그 누군가에 고개 숙입니다
제게 생명 그 이후의 의미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제비꽃, 거부할 수 없는 참 이쁜 이름입니다
제가 사는 나라의 들판엔 종달새, 뱁새, 노고지리들이
시간을 맞춰 놀러 와 동무가 되어 재미나게 지냅니다
새들이 돌아간 밤은 무섭고 쓸쓸하지만 별빛이 있어 덜 외롭습니다
제 이름은 지구상, 우주 속에 단 하나뿐인 제비꽃입니다
저를 특별히 제비꽃이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해준
또 다른 이름의 수많은 꽃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제 이름은 우주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민음사(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