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이끼 1[김영산]

초록여신 2009. 1. 23. 22:18

 

 

 

 

 

 

 

 

 

어느 시인이 평생을 가꾸다 남기고 간

고려비단이끼

화분 한 귀퉁이 천년 가야 토기 파편을 꽂고

바위부스러기 마사를 깔고

그 속에 닭뼈를 묻어 지네 한 마리 꿈틀대고

건너편 외진 구석

실낱같은 분홍기린초가 하늘거리며 공중으로 뻗어간다

무덤을 쓸 듯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까칠까칠한 머리를 만지는 것 같기도 하고 부드러운 잔디를 스치는 감촉, 아 그러고보니

직사각형 청자 빛 화분에 심어논 이끼가

잘 조성된 작은 무덤 같다

습기를 머금고 그늘에 사는 이끼다

화사하지도 누추하지도 않는 이끼다

듬성듬성 고비가 웃자라

손바닥을 대어보니 물기가 배어나온다 너는

죽은 것 같지만 안 죽고, 물기가 오면

또 살아나는 것, 어디 돌 속에 숨어 있다가도

나타난다 나타나 막 퍼져나간다

그가 허묘를 쓴 것인가

그가 묘혈을 방안에 만들었나

매장인지 화장인지 수장인지 모르게

왕족의 무덤 같기도 하고

평민의 무덤 같기도 하고

아니 평묘 같기도 한

고려비단이끼

누가 살다가 가버린 세상에 없는 무덤

 

 

 

 

* 게임광 / 천년의시작, 2009.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