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공손한 손 [고영민]

초록여신 2009. 1. 18. 22:59

 

 

 

 

 

 

 

 

 

 

 

추운 겨울 어느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 공손한 손, 창비.

 

 

 

 

.......

 목에 걸린 가시를 넘기기 위해 한 숟가락 밥을 떠 꿀꺽, 넘기는 소리가 나는 시집이다. 고영민은 가시를 뽑겠다고 병원을 찾는 극성을 부리는 대신 공들여 지어올린 밥을 통해 통증을 치유하고자 하는 시인이다. 유난히 수줍음이 많은 시인의 성품 탓도 있겠지만, 이번 시집에는 그늘지고, 흐릿하고, 야윈 풍경들에 대한 편애가 유독 눈에 띈다. 야단스럽게 들떠 있는 말들은 결코 자신의 몫이 아니라는 듯이, 쓸쓸하게 저물어가는 생의 뒷면을 차분히 응시하고 있는 그의 시는 안온하다. 저물녘 한때의 기울어가는 빛처럼 땡볕의 열기를 식힌 이 부드러운 온기가 계면조로 기울어진 시집을 조율하는 힘은 아닐까. 그리하여 아궁이에 불을 지펴 아랫목을 데우고 한줄기 연기가 되어 떠난 아버지의 '슬픈 전설'까지 맑게 통어된 한점 풍경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 제 짝이 죽자/먹지도 않고 몸의 깃털을/부리로 뽑아내던 앵무새(「슬픈 부리」)의 깃털이 그의 시가 되었을 것이다. 제 날개 깃털을 모두 뽑아내는 고통을 감수하며 소멸해간 것들을 추억하는 시편들을 통해 이제 겨우 알겠다. 울음에도 가락이 있음을, 그 가락을 통해 삶은 겨우 견딜 만한 것으로 바뀌는 것임을.

ㅡ 손택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