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햇살의 분별력 [안도현]

초록여신 2008. 12. 28. 06:33

 

 

 

 

 

 

 

 

 

감나무 잎에 내리는 햇살은 감나무 잎사귀만하고요

조릿대 잎에 내리는 햇살은 조릿대 잎사귀만하고요

 

 

장닭 볏을 만지는 햇살은 장닭 볏만큼 붉고요

염소 수염을 만지는 햇살은 염소 수염만큼 희고요

 

 

여기 날개에 닿으면 햇살은 차르륵 소리를 내고요

잉어 꼬리에 닿으면 햇살은 첨버덩 소리를 내고요

 

 

거름더미에 뒹구는 햇살은 거름 냄새가 나고요

오줌통에 빠진 햇살은 오줌 냄새가 나고요

 

 

겨울에 햇살은 건들건들 놀다 가고요

여름에 햇살은 쌔빠지게 일하다 가고요

 

 

 

* 아침의 노래 저녁의 시, 삼인(2008)

 

 

 

.......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글어지고 각진 그릇에 담기면 각진 모양이 되는 물처럼, 햇살 또한 두루 공평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는 미덕을 지녔다. 모든 존재들은 햇살을 받는 그릇이다. 꼭 제가 받을 수 있는 만큼만 받고, 제 빛깔과 소리와 냄새만큼만 받는다. 그리고 그날그날의 '만나'처럼 꼭 하루분의 햇살만 받아야 한다. 짧은 겨울 햇살이든 기나긴 여름 햇살이든 일용할 양식이기는 마찬가지.

(정끝별)

 

~~~

내가 받을 수 있는 햇살의 양은 얼마나 될까?

그런 질문을 살짝 나에게 던지며 미소지어 봅니다.

내 마음의 크기만큼, 내 인간됨됨이의 그릇만큼 딱 그만큼 받을 수 있겠지요.

넘치거나 부족함이 없는 그 찰랑이는 햇살.

베란다의 큰 창문을 통과해 내 몸을 관통하는 딱 그 정도만 (내 몸이 면적이 큰지라, 욕심이 많네요. ㅎㅎ)

늘 받을 수 있기를...

나머지는 더 필요한 사람들이 받아야 함을 안다.

욕심은 어리석음의 친구라도 했었다.

 

엄마가 평생 소독내 진동하는 하얀 병실에서 한 달 가까이 계신 적이 없었는데

올해를 마감하는 의미는 그래서 '건강'이라는 단어에 맞추려고 한다.

좋아지고 있어 다행이지만,

여전히 따사로운 바깥의 햇살과 차단하고 계실 엄마.

오늘은 나 아닌 누군가가 그 겨울의 눈부신 햇살을 안겨주었으면 좋겠다.

안겨줄 것이다. ㅎㅎ(방문객이 예정되어 있음)

그 건들건들한 겨울햇살을 환한 미소와 함께 전해줄 누군가가 있다.

오늘 엄마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여동생이 보낸 폰 속에서 환하게 미소지었던 그 환한 미소가 겨울햇살에 반짝반짝 더 빛나기를...

그래서 또르르또르르 즐거운 수다를 나누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손바닥에 받아 그 겨울햇살에 세수하고 싶은, 초록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