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한 아름의 실감 [유홍준]

초록여신 2008. 12. 15. 09:14

 

 

 

 

 

 

 

 

 

빨래를 널고 있는 아내의 등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

안고 싶다, 안아보고 싶다

실감, 한 아름의 실감이여

(허공은 백번 안아보아도 허공!)

가늘고 날씬한 여자는 싫다

아름에 꽉 찬 오동포동한 여자가 좋다

마흔셋, 드디어 나도 실감을 느끼는 나이 실감을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다 (너무 조숙한가?)

넘치지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실감이여

흐뭇하다 안아줄수록 좋아하는 실감이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다

아름답다 실감이 입었던 옷을

하얗게 빨아 너는 아내여

 

 

 

* 아침의 노래 저녁의 시, 나희덕 엮음, 삼인(2008)

 

 

 

.......

 미당이 "마흔 다섯은 귀신이 와 서는 것이 보이는 나이"라고 노래했다면, 유홍준은 "마흔 셋, 드디어 실감을 느끼는 나이 실감을 좋아하는 나이"라고 말한다. 이상주의자였거나 관념을 쫓아다니던 사람도 중년에 접어들면 어느 정도 리얼리스트가 되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뒤에서 안을 때 품을 가득 채우는 한 아름의 실감이란 젊은 날에는 잘 알기 어려운 것이다. 실감에 반응하는 또 하나의 실감, 그 한 아름의 우주! (나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