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자작나무 [김백겸]
초록여신
2008. 12. 14. 21:22
숲 속 자작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흰 눈이 내리고 햇빛이 찬란하게 비친 동지가 지난 어느 날
자작나무는 성스러운 세계목이 되었다
구름 위의 하늘과 대지의 지하를 오르내리는 샤먼의 경배에 의해
온 우주의 소리와 빛을 보고 듣는 천수관음이 되었다
숲 속에 자작나무는 전에는 그냥 평범한 나무였다
봄이 오면 새 잎을 피우고
가을이 오면 흰 가지로써 바람에 온 몸을 내 맡기는
뿌리에 온 몸의 생명을 내려보내 부활의 시간을 기다리는
목숨의 명령에 복종하는 노예였다
숲 속에 자작나무는 어느 날 불멸의 환상을 품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질서를 믿기 시작했고
흰 몸과 푸른 잎들은 신의 마음으로 타고 있는 불길임을 자각했다
흰 몸과 푸른 잎들이 불사조처럼 날아가
빛과 하나가 되는 존재임을 믿기 시작했다
숲 속에 자작나무는 그 때부터 마음에 빛을 내기 시작했고
신의 모습을 본 모세처럼
숲의 운명을 나무들에게 빛의 침묵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 『현대시학』2004년 3월호.
* 아침의 노래 저녁의 시, 나희덕 엮음, 삼인(2008.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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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과 비범이 나뉘는 기준은 불멸에 대한 믿음에 있다고 이 시는 말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눈, 그것은 꿈이나 상상력의 다른 이름이다. 한 알의 누에씨가 만 배로 자라 익은누에가 되고 마침내 나비가 되는 과정에도 네 번의 꿈과 탈피가 필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왜소한 존재는 더 이상 꿈꾸지 않는 사람이다. (나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