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가을, 상림上林에서 [마종기]

초록여신 2008. 12. 13. 19:59

 

 

 

 

 

 

 

 

경상남도 함양군 긴 숲길의 어디쯤

당나라 시대의 존경과 고관직을 버리고

망해가던 조국에 돌아온 최치원의 구름이

오늘은 잡목 사이에 서서 바람을 잡고 있네.

그 가을 상림의 따뜻한 흙길을 걸으며

구절초 몇 무더기로 피어난 그를 만나느니

비단옷 벗고 귀국한 연유를 아무리 물어도

냇물 소리 나는 쪽으로만 흰 손을 던지네.

 

 

오래전 내가 남기고 떠난 숲과 길과 냇물이여.

꽃 한번 피워보기도 전에 가을이 무르익었으니

탕진한 내 씨앗은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지나온 시간의 날개들 쉬는 조촐한 곳에서

이제는 떠나고 싶은 도시 더 이상 없지만

떠돌이의 헌 거지가 되어 간곡하게 묻노니

닳아지고 구겨진 내 어깨를 내릴 곳은 어디인가.

상림의 시대를 밟고 도망간 나라는 어디였는가.

 

 

 

 

* 2009 제54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수상시인 자전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