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부적 [원희석]

초록여신 2008. 12. 8. 06:41

 

 

 

 

 

 

 

 

 

 슬픔은 슬픔의 부적 어둠은 어둠의 부적 기쁨은 기쁨의 부족으로 막을 수 있다 풀 수 있다 속이 꽉 찬 조선 호박, 궁합 궁합이었다 사랑도 궁합이 맞아야 쪽빛으로 빛났다 고통은 고통만이 상처는 상처에 합당한 부적으로 풀 수 있었다 피하지 마라 비겁하게 피하지 마라 눈물은 눈물을 사랑하고 이별은 이별을 사랑해야 쇳물처럼 펄펄 끓었다 그 까만 고양이가 남녘 북녘 가리지 않고 넘나드는 것도 사랑이었다 사랑이 부적이었다 어젯밤 들여다본 이 땅의 하늘은 어둠이었다 어둠에 빛나고 있었다 완전한 빛의 힘, 사랑의 힘으로 오슬오슬 떨고 있었다 도망가지 마라 비겁하게 도망가지 마라 무엇이든 당당히 맞서야 매듭이 풀린다 이별은 이별을 사랑해야 원수는 원수를 사랑해야 무엇이든 풀린다 그게 우리의 진짜 부적, 그걸 우리는 믿어야 한다 어디서든 부적처럼 지니고 있어야 한다

 

 

 

* 오전 10시에 배달되는 햇살, 민음사(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