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빗물처럼 내려와 입술에 닿는 [장석원]

초록여신 2008. 12. 1. 06:29

 

빗물처럼 내려와 입술에 닿는

ㅡ 용주사

 

 

 

 

 

 

 

결합되었다가 사라진

어제의 국화와 독경 소리

 

 

남자는 누구나 황소가 되고

남자는 언젠가 물이 된다

남자는 오래 사랑한 나를 지우고

손가락 입에 넣어 검은 피를 흘려 넣는다

 

 

바람 쪽으로 기지개 켜는 어둠

나의 몸인 듯 그를 어루만진다

바람의 긴 속눈썹에 걸린 물방울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서

충북 청원군 북이면 선암2리로

거처를 옮기시니

 

 

영가시여

 

 

 

 

* 태양의 연대기 / 문학과지성사, 2008. 11. 27.

 

 

 시집 『태양의 연대기』는 두 개의 원환운동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당신'에게 '당신'으로, '광장'에서 '광장'으로의 이 재귀적 운동은 동일성을 위한 회귀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운동이 아니다. 석양의 적기(赤記)마저 뒤로하고 밤의 숲에 든 시인은, 지나온 길을 모두 잃고 다시금 뒤를 돌아본다. 사랑이 어디 하나뿐이랴, 사랑이 이제 숲 속에서 장년의 생을 시작하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