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에 배달되는 햇살 [원희석]
네모난 태양이 네모난 나뭇잎 향해 달린다 네모난 태양은 네모난 물방울을 네모난 레몬의 상자에 담아 숨 가쁘게 지상으로 배달한다 네모의 집에는 아직 네모난 우유, 네모난 신문이 배달되지 않았고 네모난 이슬은 네모난 별이 되기 위해 투명한 웃음을 버리지 않았다 어젯밤에 배달된 삼각의 어둠은 벌써 달의 옷을 입고 네모난 씨앗 속으로 숨어버렸다
오전 10시에는 네모난 아이들이 햇빛의 가장 네모난 핏줄을 뽑아 네모난 스웨터를 짜고 있다 오전 10시에 자전거 바퀴와 함께 굴러가는 네모난 햇살은 생각만 해도 오줌이 마렵다 그 햇살을 끌어안고 네모난 흙상자 속에 들어가 실컷 젖을 빨며 네모난 잠을 즐기고 싶다 오전 10시의 햇살이라면 네모난 어둠의 신발을 신은 무거운 바위도 금방 껍질을 부수고 나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네모난 하늘새가 되어 날아갈 수 있다
어제 밤새 울며 헤매던 밤고양이도 수염이 네모나 있다. 아, 하! 하! 하! 밤새 쏘다니더니 수염이 네모나졌구나 네모난 굴뚝으로 드나들어 그럴까? 네모난 생선을 훔쳐 먹어서 그럴까? 아버지의 연장이 네모난 가죽으로 덮여 있어서 그럴까? 네모난 수염을 가진 네모난 고양이는 네모의 집에 들어가지 못해 네모난 들창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똑똑 네모난 눈물을 떨구고 있다 신이 공평하게 나눠준 얇은 담요 한 장을 들고 네모난 비를 맞으며 덜덜 떨며 죽을 먹고 있다
네모난 태양이 네모난 상자들이 쌓여 있는 상자의 들판으로 떠오른다 오전 10시에 지상으로 배달되는 햇살은 둥근 상자의 추억을 지워버린다 네모난 세계의 아침은 물빛이며 네모난 상자의 저녁은 불빛이다 그 사이를 네모난 장난감들이 부푼 심장과 텅 빈 허파를 매만지며 빙빙 돌다 진흙이 된다 네모난 새들은 깃털을 뽑아 너구리에게 주고 너구리는 수염을 뽑아 나뭇잎에게, 나뭇잎은 나뭇잎에 구르는 이슬의 피를 새에게 주자 햇빛 속의 진흙들은 조금씩 부풀어지거나 일그러지며 네모난 흙이 되어간다
네모난 태양이 슬금슬금 굴뚝 위에 걸어 올라가더니 걸어가는 진흙을 향해 노랗게 따뜻한 귤을 던지고 있다 신이 가진 시계는 레몬처럼 새콤하지 않고 늘 삶은 감자처럼 물컹물컹 뜨겁다 신은 네모난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기가 너무 재미나 진흙들이 눈물 흘릴 줄 안다는 사실을 오래 전에 잊어버렸다 진흙으로 빚어놓은 지 하도 오래되었으니 잊을 만도 하다 요즘 신은 건망증이 심하다 신의 피와 진흙의 피는 어떻게 틀릴까? 신도 진흙처럼 허파로 숨쉴까? 신은 진흙들의 체온이 쇠처럼 차가워지고 있는 걸 모르고 있다
네모난 태양이 둥근 굴뚝을 거쳐 볼기짝처럼 빨갛다 나무의 뼛가루를 홀딱 뒤집어썼다 연탄집게는 입을 너무 벌리고 웃다 입이 자루만큼 찢어졌다 주전자는 참다못해 하나밖에 없는 네모난 눈으로 네모난 증기를 줄줄 흘린다 아, 하! 하! 하! 우습다 신도 세상이 밝으면 실수를 한다 굴뚝새가 결코 굴뚝이 될 수 없고 할미꽃은 언제나 자식이 없고 통조림 깡통은 언제나 배가 고프고 손톱이 머리칼이 될 수 없는, 아, 하! 하! 하! 신의 실수, 엉터리 같은 신의 장난, 겁을 먹은 네모난 태양이 엉금엉금 다시 네모난 어둠 속으로 기어간다 시커먼 윗옷을 벗고 양말도 벗고 저런! 저럴 수가! 신의 가슴이 진흙처럼 메말라 있다
* 시에(고 원희석 시인 10주기 추모특집), 2008년 겨울호, 시와에세이.
---------------------------------------------------------------------------------------------------
원희석
1956년 서울 출생. 1987년 『문학사상』제1회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물이 옷 벗는 소리』, 『바늘 구멍 앞의 낙타』등.
1998년 8월 19일 심근경색으로 타계. 유고시집 『오전 10시에 배달되는 햇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