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고여 있는, 그러나 흔들리는 [나희덕]

초록여신 2008. 11. 28. 09:43

 

고여 있는, 그러나 흔들리는

                우포에서

 

 

 

 

 

 

 

 

 

후두둑, 빗방울이 늪을 지나면

풀들이 화들짝 깨어나 새끼를 치기 시작한다

녹처럼 번져가는 풀,

진흙뻘을 기어가는 푸른 등 같기도 하다

어미 몸을 먹고 자란 우렁이 새끼들도 기어간다

물과 함께 흔들리고 있는 풀들 사이로

빈 우렁이 껍데기들 떠다닌다

 

 

기어가는, 그러나 묶여 있는

고여 있는 그러나 흔들리는

 

 

비가 아니었다면

늪은 수만년을 어떻게 견뎠을까

무엇으로 흔들림의 징표를 내보였을까

 

 

후두둑,

후두둑,

후둑후둑......

늪 위에 빗방울이 그려넣는 무늬들

 

 

오래 고여 있던 늪도

오늘은 몸이 들려 어디로 흘러갈 것만 같다

 

 

 

 

* 어두워진다는 것,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