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발작 없이도 나는 [박진성]

초록여신 2008. 11. 26. 21:50

 

 

 

 

 

 

 

 

저녁을 다 지나면 팔당의 수원(水原)에 닿을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강물은 세차게 불안 앓는지

퇴촌 지나 남종, 길 위에 누웠던 격렬함

어둠 속에서 흔들린다, 흔들린다 지금은

새벽 네시, 미루나무의 잠이 가장 순결하게 타오르는 시간,

약을 버리고 의사의 충고도 버리고 눈 덮인

계룡에 오른 적이 있었지 발작, 했었던가

약이나 처방전 따위 나무에 얹어두고 걷는다,

경기 내륙 지방 하천들에 나를 버린다

경안천에 불안을 버리고 곤지암에 초조를 묻는다

물결이 물결을 씻어 세찬 물고기 튀어오르겠지,

저 시커멓고 근육이 죄다 풀린 길은

강을 지키려고 굴곡을 지닌 것,

새벽을 다 지나면 강의 호흡법을 배울 수 있을까

발작하려는 내 몸으로 흘러오는 저 물고기, 수초, 늪,

둑방 길에 누워 오래도록 바라보네

중력이 아니라 제 자신의 힘으로

흘러넘치지 않고 흐르는 긴 긴 강

금세 고요를 되찾은 물결 따라 숨결, 새벽을 다 지나면

발작 없이도 나는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 아라리, 랜덤하우스.